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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제: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 지은이: The Rev. William Bruce
  • 옮긴이: 배제형
  • 출판일: 2001년
  • 페이지수: 7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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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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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의 주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는 신성한 말씀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흥미롭고 교훈적인 부분이다. 이 책은 지상의 사건 중 가장 위대한 사건, 하느님께서 육으로 나타내 보이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구속의 신비를 펼쳐 보이고 있다. 따라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혼(soul)은 불멸한다는 것, 미래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빛을 드리우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영원한 세계와 얼마나 가깝게 접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그 곳과 언제나 연결되고 있다는 것, 우리는 빛의 나라와 어둠의 나라 양쪽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영적 지혜의 가장 순수한 교훈과 우리의 복되시는 주님의 가르침과 생애로 본보기를 보여 가장 높은 실제의 선함을 우리에게 공급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그분의 고통받고 죽으심에서 우리는 참고 견딤과 용서하는 사랑의 가장 완전한 모형을 가지게 되고, 그분의 부활과 승천 하심에서 우리는 영적인 삶과 영원한 영광이라는 가장 높은 소망을 지니게 된다.

그렇다고 구약성서의 말씀들이 위와 같은 가장 중요한 주제들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구약성서는 주님이 오신다고 수없이 예보했고 그 예보중 일부는 노골적이기도 했다. 미래의 사건을 말할 때 늘 그러하듯, 아직도 구약성서의 강림에 대한 예보는 칙칙한 유리를 통해 보는 수준일 뿐이다. 그분이 지상에 오시어 건설하시겠다는 왕국에 관련되는 주제 역시 아직도 흐릿하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신약 성서의 빛이 구약 성서의 교리나 예견에 드리워 질 때 구약의 모든 주제들은 제각기 적절하게 구분이 이루어져 모습을 갖추게 되고 구약 성서 속의 높은 취지가 명백하고 충분하게 이해된다. 그러므로 구, 신약이라는 두 성서는 서로 결합되어 있어 구원에 관한 위대한 지식, 즉 주님께서 무한한 자비로 역사하시는 것, 그분의 모든 백성에게 지금도 값없이 제공하시는 구원에 관한 지식을 동시에 함유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기독종교의 총체요 본질이고, 구원의 필수적인 수단이요 조건이다. 이런 사항들이 이 책의 글자 하나 하나에 확실히 박혀서 우리 앞에 놓여지고 있다.

그러나 글자 속에는 영적 의미가 있다. 이 영적 의미는 말씀 속의 모든 진리를 드높이면서 구원의 모든 수단들을 한층 더 보강한다. 하느님께서 그분의 일 안에 쌓아두시듯 그분의 말씀안에도 지혜와 지식에 관한 무한한 보물을 쌓아두셨다. 때가 찰때, 즉 인간이 거룩한 책의 영적의미를 지각해서 인정할 정도로 자질이 갖추어지는 때, 거룩한 책의 봉인이 떼어지는 때 만민은 계시가 있던 때로부터 그 책의 깊숙한 곳에 감추여 놓였던 경이로움을 “와서 보게” 될 것이다.

과거 말씀은 글자적 의미에 국한되어 이해되어 왔다. 물론 말씀 속에 영적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은 교회에서도 널리 인정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영적 의미를 밝혀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었지만 그 성과는 대단히 미흡했다. 비록 영적 의미가 밝혀지기에는 때가 이르다 해도 어쨌든 말씀 속에 내적 의미가 존재한다는 믿음만큼은 계속 보존되어 왔다는 것은 주지해 볼만하다. 글자적 의미는 주님의 첫 강림의 교회가 요구하는 것에 잘어 울렸다. 영적의미는 그분의 두번째 강림의 교회가 사용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그분의 첫 오심은 연약함과 희미함 그대로였다. 그분의 둘째 오심은 권능과 위대한 영광 바로 그 것이다. 우리가 육체 안에 오신 주님에 관한 지식은 말씀의 글자적 의미로부터 획득하지만, 영 안에 오시는 주님에 관한 지식은 말씀의 영적 의미로부터 얻는다. 주님의 둘째오심은 인물(person)로 오시는게 아니라 권능(power)으로 오신다. 이 둘째 강림은 이미 있어졌다. 이를 계시했던 말씀들의 영적 의미도 알려져 있어 이제는 우리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유가 사건과 계시는 서로에게 관계되기 때문이다. 거룩한 말씀의 내적 의미는 두 개의 큰 주제, 즉 주님의 영화하심(glorification)과 인간의 거듭남 (regeneration)을 밝히는데 사용된다. 이 두 가지 일은 원인과 결과로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주님의 영화하심은 인간 거듭남의 근원이요 모형이다. 인간이 거듭나질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영화하셨기 때문이다. 영화하심을 수단으로 주님은 구세주가 되셨다. 거듭남을 수단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영화하심과 거듭남은 본성 측면에서 똑같다. 단지 수준이 다를 뿐이다. 영화하심으로 주님은 그 분의 인성을 신성으로 만드셨다. 거듭남을 수단으로 그 분은 인간을 영적으로 만든다. 이 두가지 일은 육을 입으신 사건의 시작과 끝이고 거룩한 말씀의 속 뜻을 이끌어 가는 주제들이다. 속 뜻 중에서 가장 깊은 의미 또는 천적 수준의 의미는 주님의 영화하심을 취급하고, 내적의미 또는 영적수준의 의미는 인간의 거듭남을 다룬다. 거듭남에 관한 주제는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게 되는 부분인고로 영적 수준의 의미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 납득하는 범주에 있어 더욱 우리의 시선을 끄는 바 우리를 계발시키는데 대단히 유용하다. 말씀의 속 뜻에서 취급되는 또 다른 주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교회 또는 종교적 처방(religious dispensation)에 관한 것이다. 이것의 진보와 퇴보는 “내적인역사성” 또는 “대략적인” 의미를 형성하는데 속 뜻 중에서 글자적 의미에 가장 가깝다.

말씀을 설명할 때 그 구절 또는 문단이 주님이나 인간, 또는 교회, 어디에 관계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매우 유용한데 이런 사항을 염두에 두고 있노라면 독자들은 또 다른 자기 발전을 위한 응용을 찾아낼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 이유가 그들 사이에 상응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의 영적해석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영적해석을 대할때 주의 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영적 의미가 글자적 의미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결코 없다. 물론 말씀의 어떤 부분은 글자대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설사 그 글자에 영적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들에 의해 믿어지고 존경받기는 글자적 의미와 영적 의미는 동등해야 한다. 모든 교리는 말씀의 글자적 의미로부터 끌어 내진다. 그리고 모든 영적진리는 글자적 의미를 그 진리의 필수적인 기초로 삼아 그 안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끝으로 첨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혜로 충만된 거룩한 말씀은 우리의 모든 영적인 궁핍을 채우는데 충분한 바 우리는 성심으로 말씀에 다가가서 가르침을 잘 들으려 준비된 영혼을 지니고 빛 자체이신 그분을 찾아야 하리라. 그런 준비된 심정 상태라면 주님은 각자의 영적 상태에 가장 적합할 수 있는 것, 우리의 영원한 복지를 위해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 거룩한 페이지로부터 끌어내 주시리라.

목차

서문------11
제1장-----14
제2장-----33
제3장-----52
제4장-----67
제5장-----90
제6장-----137
제7장-----173
제8장-----191
제9장-----213
제10장----237
제11장----266
제12장----280
제13장----305
제14장----324
제15장----339
제16장----350
제17장----363
제18장----375
제19장----394
제20장----410
제21장----426
제22장----448
제23장----466
제24장----483
제25장----524
제26장----553
제27장----595
제28장----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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